위험한 놈이 날 샀어
아이버리 클라크 시점
오천만 달러...!?
내 시선이 입찰한 남자에게로 쏠렸다. 키는 족히 188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다. 몸에 꼭 맞는 고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그 아래로 단련된 체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지만 마스커레이드 가면 탓에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여자 한 명에게 오천만 달러를 부른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천만 달러는 결코 평범한 액수가 아니었으니까.
너무나 당혹스러워 말 한마디 나오지 않았다. 나를 산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내 영혼을 꿰뚫듯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이 역병처럼 나를 잠식해 왔다. 안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듯, 온몸을 오염시키며 퍼져 나갔다. 그에게서는 강렬하고도 위험한 기운이 풍겼다. 머지않아 내 모든 것을 앗아갈 불길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무도 그의 금액에 맞서지 않았다. 하나둘 패를 내려놓았다.
마치 모두가 그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는 누구인가? 왜 다들 저렇게 겁먹은 얼굴인 거지?
사회자가 망치를 내리쳤다. "뒤편 신사분께서 오천만 달러에 낙찰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 아름다운 분은 이제 당신의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운명을 봉인했다.
순식간에 경비원이 내 팔을 움켜쥐고 무대 아래로 끌어당겼다. 그러더니 내 머리에 검은 자루를 씌웠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이 입혀 준 드레스와 진주 목걸이는 여전히 몸에 걸쳐져 있었다.
손가락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방금 일어난 일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현실인 걸까?
나는 정식으로 한 남자에게 팔렸다. 알지도 못하고 만난 적도 없는 남자에게 팔려 버린 것이다. 내일 아침 내 삶이 어떤 모습일지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운명이란 이토록 잔인한 것인가?
이 손에 잡힐 듯한 공포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희망도, 구원도 한 줌도 남지 않은 채로. 파멸을 기다려야 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최악의 상황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도록 참아 온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는 감촉이 느껴졌고, 나는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끌려갔다.
"타."
내 팔을 붙잡고 있던 경비원이 나를 밀어 넣었다. 차인지, 아니면 리무진처럼 더 넓은 공간인지 알 수 없었다. 뒷좌석에 내팽개쳐졌다.
"주인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 소리 지르거나 떠들 생각은 하지 마. 주인님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으면..."
경비원이 낮게 으르렁댔고, 목에 뾰족한 무언가가 닿는 게 느껴졌다.
주인님...
나를 산 그 남자가 내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른다.
내 제발 보내 달라고 빌면, 보내 줄까? 해치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면, 들어줄까?
하지만 그가 나를 바라보던 눈빛은... 아름다운 여자를 애지중지할 부류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경매에서 산 여자를 만찬 자리에 데리고 나가거나, 값비싼 드레스와 보석을 사 줄 것 같지 않았다.
그에게는 뭔가 뒤틀린 구석이 있었다. 그 눈빛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방식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하겠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눈물이 또 흘러내렸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삶의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져 내렸다. 몸부림쳐 보려 했지만 수갑이 살을 파고들었다.
이런저런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는 것이 느껴졌다. 최악을 각오하며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누구세요?" 나는 질겁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오직 뒤틀린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 누군가 뒷좌석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고, 순간 주변 온도가 몇 도는 곤두박질친 것 같았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렸고, 이어 차 엔진이 켜지더니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순수하고 날것 그대로의 공포가 혈관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가 여기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나를 산 그 사람이.
남자의 체온이 느껴졌다. 뜨거운 용암처럼 내 감각을 마비시키며 전해져 왔다. 더 멀리 몸을 밀어 보려 했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나는 갇혔다. 이 괴물과 함께.
공황이 혈관을 타고 치솟았다. 좌석 위에서 몸부림치며 도망칠 방법을 찾으려 했다.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려 죽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이 괴물에게 묶여 있는 것보다야 나을 테니까. 신고 있던 힐로 창문을 걷어차려 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삼십 분 넘게 계속했다.
하지만 걸걸한 웃음소리가 들렸을 때 움찔했다. 나를 산 남자였다. 내 발버둥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내 비참함과 무력함을 보는 걸 즐기고 있다.
정말 잔인하고 병든 새끼.
"꽤나 악착같은 것이로군. 제법 잘 싸우던데." 마침내 그가 말했고,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의 목소리는 경매장에서만큼이나 잔인했다. 가장 깊은 공포를 심어줄 악마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이 목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무대에서 감히 한마디라도 내뱉은 여자는 없었는데, 넌 날 꽤 즐겁게 해줬어." 그가 킥킥 웃으며 계속했다.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 완벽한 외모를 가진 화난 미녀가 다른 남자들한테, 일초 만에 널 죽일 수도 있는 남자들한테 소리를 지르다니... 평생 그렇게 흥분해본 적이 없었어."
뭐?
"아이버리, 널 만나기 전까지 그렇게 흥분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가 악마처럼 웃었고, 나는 그의 말에 완전히 역겨움을 느꼈다.
이건 안 좋다. 정말 안 좋아. 그는 정신이 병들었다. 내 울음과 발버둥이 그를 흥분시켰다고? 그는 가학증 환자인가?
그에 대한 증오가 열 배로 커졌다. 나는 사이코패스의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너를 찾느라 애쓴 보람이 있었어." 그가 굵게 속삭여서 나는 당황했다.
찾다고? 그가 나를 찾았다고? 하지만 그를 만난 적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그를 만난 적이 있나?
어떻게 그 같은 무자비한 사이코패스의 레이더에 걸린 거지?
맙소사, 이건 정말 안 좋다.
목숨이 달린 것처럼 꿈틀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손에 채워진 수갑이 손목에 상처를 냈고, 숨이 가빠졌다.
그때 갑자기 팔을 세게 움켜쥐는 손이 느껴져 나를 흔들었다.
"목이 부러지는 걸 원치 않는다면 가만히 있어, 마 벨라." 그가 내 얼굴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게 느껴지자 내 척추가 굳어지고 등줄기로 전율이 흘러내렸다.
너무 가깝다.
그의 목소리, 아우라, 체온, 모든 것에서 위협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끝장내러 온 악마의 화신이었다.
그의 손아귀는 원한다면 내 손을 두 동강 낼 수 있을 만큼 강했다. 한 치도 움직일 수 없었고, 감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사이코가 다음에 나한테 무슨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널 찾았는지 넌 모를 거야. 하지만 넌 정말 재미있는 삶을 살고 있더군, 아이버리." 그가 내 귀에 속삭여서 더 많은 전율이 일었다.
"혼자 여행을 가려고 하고,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남자를 건드리고, 그러다 납치당해서 갑자기 경매에 팔리고, 정말 유쾌한 광경이었어." 그가 조롱하듯 웃어서 그에 대한 증오가 더욱 불타올랐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남자?
잠깐, 생각해보니 그가...
갑자기 머리에 씌워진 자루가 벗겨지고, 빛이 홍채를 관통해 거의 눈이 멀 뻔했을 때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가장 피하고 싶었던 사람의 눈과 마주쳤다. 라운지에서 사타구니를 찬 그 남자!
어떻게 날 찾아낸 거지?
갑자기 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발레리 씨.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명령하신 대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발... 발레리...?"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남자를 혼란스럽게 바라봤다.
"시, 저희 주인님은 알리고 발레리 킹입니다." 그 남자가 내게 대답했다.
알... 알리고 발레리 킹?
그 이름을 듣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나는 이 이름을 분명히 안다. 신문과 언론에 온통 나오는 이름이다. 그는 세계의 주요 재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강력하고 부유한 만큼 무시무시했다. 그에 대해 떠도는 소문이 많다. 나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소문 중 하나는 그가 무기와 마약의 치명적인 사업을 운영하며 매우 위험한 범죄자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마피아.
"오랜만이야, 마 벨라." 그가 차가운 어조로 드러내자 내 척추가 얼어붙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순전히 가학적이고 뒤틀려 있었다.
젠장, 나는 무슨 일에 휘말린 거야!?
